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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조명 아래, 두 사람의 술잔 부딪히는 소리)


“요즘 어떻게 사냐?”

“나야 뭐, 그냥저냥이지. 너는, 잘 지내고?”

“비슷하지 뭐. 에휴, 사는 게 바쁘니까 얼굴 보기도 힘드냐.”

“그러게나 말이다. 마시자. 참, 그러고 보니까 그 새끼 기억나냐?”

“그 새끼가 누군데?”

“그 왜 시발, 그 고등학교 때 네가 좋아하는 여자애랑 사귄 새끼.”

“아, 그 씹새끼? 시발, 내가 그 새끼를 어떻게 잊냐. 그 새끼 왜?”

“걔 최근에 이혼했다더라.”

“누구랑 결혼했었는데?”

“네가 좋아했던 애.”

“시발. 좆같네. 이혼했다고? 잘됐네. 아니다, 차라리 계속 같이 살지, 비슷한 연놈끼리.”

“듣자 하니, 여자가 바람났다던데?”

“그러냐? 걔랑 나랑 잘됐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럼 그 새끼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마시자.”


(불판 위 삼겹살 익는 소리)


“야, 너 고기 왜 이렇게 잘 굽냐?”

“원래 잘 구웠어.”

“아닌데? 그 언제냐, 우리 그때, 그 강원도에 스키 타러 갔을 때, 너 그때 고기 다 태워 먹었잖아.”

“언제지?”

“이 새끼 모른 척하네.”

“아니, 진짜 기억이 안 나.”

“아, 우리 몇 살 때더라? 스무 살 때였나, 스물한 살? 강원도에 펜션 잡고 한번 놀러 간 적 있었잖아.”

“아, 군대 가기 전에?”

“어어, 맞다. 군대 가기 전이었다. 그때 너 입대한다고 머리 다 밀고 춥다고 지랄하던 거 생각난다.”

“음, 이제 기억났다. 그때 내가 고기 다 태웠었나?”

“그래, 그때 네가 집게 들고 설치면서, 형이 입대 전에 고기 한번 구워줄게, 이 지랄 했었잖아. 그리고 돼지고기 다 태워 먹고.”

“그랬었나?”

“그랬었다. 그래서 소고기 구울 때는 너한테 집게 절대 안 줬었는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지금은 고기 잘 굽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이렇게 되더라.”

“아저씨는 고기를 잘 굽는다, 이거네. 슬프네.”

“마시자.”


(불판 가는 소리, 장소가 바뀌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


“너 담배 뭐냐?”

“나 골드. 너는?”

“수 0.5 미리. 나 너 꺼, 하나만.”

“자. 너 왜 얇은 거 피냐?”

“목 아파서 못 피겠더라. 나 요새 매일 기침하잖아, 가래도 나오고.”

“그럼 끊던가.”

“끊으려고. 근데 바로는 못 끊겠다. 일단 얇은 거 피면서 천천히 줄여나가야지.”

“지랄. 그렇게 해서 절대 못 끊는다.”

“모르겠다. 폐암으로 죽던, 구강암으로 죽던, 스트레스 암으로 죽던, 다 비슷하지 않겠냐?”

“내가 말했잖아. 담배 피우면 암 걸릴 확률 올라가고 건강 안 좋아지지?”

“그렇지.”

“근데 담배를 안 피웠으면, 난 진작 스트레스로 죽었거나 자살했을걸. 너는 아니냐?”

“맞지, 그것도 맞지.”

“인간의 3대 영양소가 뭐냐?”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그래, 계속 펴. 뭐 오래 살겠다고.”

“모르겠다. 들어가자, 춥다.”


(다시 술잔 부딪히는 소리)


“너 고진감래 먹어봤냐?”

“고진감래? 그게 뭔데?”

“뭐야, 너 고진감래 주 한 번도 안 먹어봤냐?”

“아니, 그게 뭔지 설명을 해줘야 내가 먹어봤는지 안 먹어봤는지 알지.”

“그, 뭐였지? 인생은 쓰고 열매는 달다, 였나?”

“인내, 인내, 병신아. 인생이 아니라 인내.”

“아, 맞다. 어쨌든 그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그게 왜?”

“고진감래 뜻이 그거거든? 그거랑 똑같아. 맥주잔에 맥주 살짝 넣고, 그 안에 콜라 넣은 소주잔 넣고, 그 위에 소주 넣은 소주잔 넣으면 고진감래 주 완성.”

“폭탄주 아니냐?”

“어, 근데 엄청 맛있어. 맨 처음에 소주가 들어오면 쓰잖아. 그다음에 맥주 들어오면서 한번 중화하고, 그리고 콜라가 달달 하게 들어오면 극락이지.”

“근데 굳이 그렇게 먹어야 되냐?”

“재밌잖아.”

“귀찮잖아.”

“그렇긴 해.”

“그냥 마시자.”

“인생은 쓰고 술은 달다.”


(빈 술병을 치우고 새 술을 가져오는 소리)


“우린 언제쯤 소고기에 양주 먹냐….”

“먹으려면 먹을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솔직히 좀 부담되잖아.”

“야, 난 근데 그렇게 생각해. 소고기? 맛있지. 근데 좀 과대평가 된 감이 있다고 본다.”

“개소리야?”

“아니, 생각해봐. 소고기가 비싸고 사람들이 하도 맛있다 해서 그렇지, 돼지랑 닭이랑 비슷하지 않냐?”

“그런가?”

“그래, 난 솔직히 돼지고기가 더 맛있는데.”

“듣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맛만 놓고 보면 나는 닭, 돼지, 소 순이야.”

“돼지랑 닭도 맛있지.”

“그래, 솔직히 소는 만들어진 맛이라고. 순수 체급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준 맛인 거야.”

“근데 그렇게 따지면 돼지랑 닭도 마찬가지 아니냐?”

“뭐가?”

“소가 비싸서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돼지랑 닭도 친숙해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 아니냐?”

“아니야, 그냥 맛있어.”

“아니 아니, 생각해 봐. 소는 비싸서 자주 못 먹잖아?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싼 돼지랑 닭을 많이 먹지.”

“그렇지.”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잖아. 너는 사실 돼지랑 닭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소가 비싸니까 도망간 거지. 그거야말로 사회가 만든 맛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럼 양주는? 너는 양주랑 소주 중에서 뭐가 더 좋은데?”

“그걸 정하려면 우선, 술을 마시는 이유부터 알아야지. 너는 술을 마시려는 이유가 뭐냐?”

“글쎄, 맛있잖아.”

“지랄, 술이 뭐가 맛있냐? 그냥 마시면 즐거우니까, 취하려고 마시는 거지.”

“아, 맞네.”

“그래. 양주는 도수가 높아서 금방 취하는데 비싸지? 근데 소주는 싸잖아.”

“그럼 양주 마시는 게 더 낫지 않냐?”

“아니지. 양주는 비싸서 찔끔찔끔 마시잖아. 근데 소주는 그런 게 없지.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술이 강한 것도 아니고, 취하는데 소주도 충분해.”

“근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고량주가 최고 아니냐? 나 저번에 마트 갔다가 50도 고량주 1350원 하는 거 봤는데.”

“아, 그 초록색 병에 거북인가 그려져 있는 거?”

“어, 맞아. 어떻게 아냐?”

“나 그거 마셔봤어. 한두 잔 마시고 10분 있으면 바로 취하던데.”

“생으로 마셨어?”

“어. 마실 때 식도 엄청 뜨겁더라.”

“오, 다음에 한번 마셔봐야겠네. 어쨌든, 너는 소주가 더 낫다?”

“그렇지. 우리 쥐뿔도 없으면서 허상을 쫓지 말자.”

“그것도 맞지. 근데 소주는 다음 날 숙취가 좀 있잖아. 양주는 그래도 깔끔한데.”

“그건 취할 때까지 안 마셔서 그래.”

“그런가? 그런 것…, 아, 시발.”

“어이구, 다 부서라 부숴. 너는 꼭 술 마시면 뭐 하나 깨더라.”

“사장님 죄송합니다!”

“야, 그거 맨손으로 만지지 마. 사장님, 죄송한데 빗자루 있어요?”

“야, 일하시는데 괜히 귀찮게 하지 마. 사장님 괜찮아요, 저희가 알아서 치울게요.”

“지랄, 네가 지금 일을 더 만들잖아.”

“야, 조졌다. 우욱, 나 토….”

“아, 시발! 화장실 가서 해, 여기서 하지 말고. 대참사 난다.”

“미안한데…, 우욱!”

“꺼져, 꺼져! 내가 치울 테니까 화장실 가라고.”

“...빨리 갔다 올게.”

“어휴, 저 진상 새끼.”


(깨진 유리 조각 치우는 소리)


“아,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술만 마시면 저래서.”

“아유, 괜찮아요.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다 보면 술병도 깨고 그러는 거지.”

“사장님, 빗자루 저한테 주십시오. 저희 테이블이 깬 건데 저희가 치워야죠.”

“괜찮아, 괜찮아. 이게 제 일인데요, 뭘. 술값이 괜히 술값인가? 이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술값인 거예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장사 철학, 멋있으시네요. 여기 단골 해야겠다, 진짜로.”

“어우, 그럼 난 너무 좋지. 근데 친구분 너무 안 오시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저 친구가 원래 저렇습니다. 저러다가 아마 곧 문자 올 겁니다. 어, 왔다.”

“뭐랍니까, 친구분 상태는 좀 괜찮답니까?”

“담배 피우러 나오라네요. 사장님 저희 삼겹 2인분이랑 소주 한 병 더 부탁드릴게요.”


(아까보다 더 세차게 부는 밤바람 소리)


“어후, 추워. 완전 겨울이네. 이제 담배도 못 피우겠다.”

“그러게. 나 불 좀.”

“자. 속은?”

“다 게워냈다.”

“좀 괜찮고?”

“염라대왕이랑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나니까 괜찮네. 술 마신 거 다 토해낸 것 같다.”

“이 새끼 염라대왕 자주 보네. 술만 마시면 보냐.”

“그러게, 곧 친구 먹겠다.”

“술 한 병 더 시켰다.”

“염라 한 번 더 보겠네, 염병.”

“으, 춥다.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라. 나 한 대만 더 피고 들어갈게.”

“또 핀다고? 안 춥냐?”

“어. 속 좀 갤 겸, 바람 좀 쐬려고.”

“그러던가.”


(삼겹살 굽는 소리와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


“인생이란 뭘까.”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취했냐?”

“적당히? 아니, 근데 우리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뭐, 어때서? 적당히 입에 풀칠하고 살면 그게 인생이지.”

“낭만 없는 새끼. 너는 어릴 때 꿈 같은 거 없었냐?”

“있었지.”

“그래, 그거야. 내가 최근에 옛날에 보던 만화 주제가를 들었거든? 근데 거기 가사가 내 가슴에 대못을 박더라고.”

“무슨 가사?”

“잠시만, 뭐였더라? 그, 약간 각자 커진 꿈의 이야기를 하는 동창회에 못 가는 이유가 내 꿈이 초라해져서,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가사 좋네.”

“근데 방금 내가 물어봤는데도 너는 네 꿈이 뭐였는 지 얘기 안 했잖아. 그냥 있었지, 라고만 하고.”

“그건 굳이 얘기 안 한 거지. 얘기하라면 할 수 있어.”

“됐다, 늦었어. 생각해 보면 우리 어릴 때는 누가 안 물어봐도 자기 꿈 얘기하고 다녔잖아.”

“그랬었지. 근데 그건 순수할 때나 할 수 있는 거지. 우리도 이제 아저씨잖아.”

“나는 그때랑 변한 게 없는데?”

“뭘 안 변해, 이 새끼야. 수염 나고, 배 나오고, 눈도 음흉해지고, 이제 징그러워졌는데.”

“그건 겉이지. 속은 유치원 때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다 똑같아.”

“그렇다 해도 상황이 달라졌잖아.”

“바로 그거야. 상황? 오히려 지금이 더 나아. 유치원 때 생각해봐. 유치원생이 뭘 할 수 있는데. 뭐, 돈을 벌어, 술을 마셔, 뭘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지.”

“아무것도 못 하지. 근데 꿈은 컸잖아.”

“세상 물정을 몰랐으니까.”

“난 지금도 몰라. 남들 다 국제 정세니, 정치니, 주식이니 하는데, 난 지금도 아무것도 몰라.”

“자랑이다, 이 새끼야.”

“이게 이상하다니까. 분명 어릴 때보다 할 수 있는 건 많아졌는데, 어릴 때보다 꿈은 작아졌어.”

“어 시발, 맞네. 듣고 보니까 그렇네. 아, 나도 취했나?”

“근데 웃긴 건, 변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주변도 변했어.”

“어떻게?”

“어릴 땐 대통령이니, 연예인이니, 뭘 말해도 주변에서 될 거야, 응원할게, 뭐 이렇게 동의해줬었잖아.”

“그렇지.”

“근데 지금은 내가 연예인 한다고 하면 너는 뭐라 할래? 마이클 잭슨을 뛰어넘은 연예인이 될 거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안 되는데?”

“야, 시발. 꿈을 좀 현실적으로 꿔야지.”

“그게 왜 비현실적이야? 그럼 마이클 잭슨은 뭔데? 대통령은? 빌 게이츠는? 걔들은 왜 존재하는데? 걔들은 어떻게 그렇게 됐는데?”

“우리랑 출발점이 다르잖아.”

“시발, 다 같이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 다 같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데 뭐가 달라. 잘 봐, 그런 식으로 주변이, 스스로가 계속 울타리를 만드는데 어떻게 큰 꿈을 꾸냐?”

“야, 걔네는 그, 뭔가, 신의 선택을 받은 애들이잖아.”

“지랄. 너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냐?”

“갑자기?”

“신은 만들어지는 거야.”

“네 말 맞다. 너는 그대로네. 중학교 2학년이나 할 법한 말을 하냐.”

“아니 아니, 봐봐. 내가 지금부터 신을 만들어볼게.”

“해봐.”

“신을 만들려면 우선, 인간부터 알아야 해. 너 인간이랑 다른 동물의 차이점이 뭔지 아냐?”

“글쎄다, 지능?”

“맞아, 지능. 인간은 지능이 높지.”

“그럼 너는 인간 아니지 않냐?”

“왜?”

“지능이 침팬지보다도 낮으니까, 이 새끼야.”

“아가리. 어쨌든 지능, 상상력이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지.”

“그렇지.”

“그럼 이 상상력의 장점이 뭘까. 대답하지 마, 어차피 모르잖아.”

“시발.”

“상상력의 장점은, 상상력이야.”

“뭔 개소리야. 시발, 너도 모르지?”

“기다려봐, 이 우매하고 어리석은 중생아, 지금 말하려고 하잖아. 상상력은 곧 위기 감지 능력이야. 자, 예를 들어볼게. 저기 문밖에 커다란 호랑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나갔다가 호랑이한테 습격받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어.”

“오, 어떻게 했냐. 능력 좋네.”

“감사. 어쨌든, 그래서 너한테 저 문밖에 호랑이가 있다고 설명을 했어. 그럼 넌 어떻게 할래?”

“문밖으로 안 나가겠지.”

“왜?”

“호랑이가 있다니까.”

“넌 본 적 없잖아.”

“네가 보고 왔잖아.”

“그거야. 넌 문밖을 본 적 없지만, 내 말을 듣고 문밖에 있는 호랑이를 상상하게 되잖아. 그래서 문밖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게, 상상력이랑 연계된 위기 감지 능력인 거야.”

“오, 시발.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추워서 그래, 추워서. 어쨌든, 이게 끝이 아니야. 상상력은 위기 감지뿐만 아니라, 발전까지 동반하거든.”

“발전?”

“그런 말 못 들어봤냐? 상상은 문과가 하고, 개발은 이과가 한다.”

“초면인데.”

“넘어가고. 어쨌든 위대한 발견의 기반은 기발한 상상력이다, 이거지. 어떻게 하면 생존경쟁에서 더 유리해질까,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간은 현재의 기술력을 손에 넣은 거야.”

“마치 네가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애랑 잘되는 상상을 한 것처럼?”

“아, 시발 새끼야, 좀! 그 얘기 그만하라고.”

“이 새끼, 상상만 하고 행동을 안 하니까 뺏기지. 아, 뺏긴 것도 아니네. 애초에 잘 안 됐으니까.”

“그러게, 그때 나섰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

“시발. 어쨌든,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언어가 만들어지고 문자나 그림이 만들어진 거야. 그게 인간이랑 동물이 달라지는 출발점이 된 거고.”

“일리 있네. 근데 그거랑 신이랑 무슨 상관이냐?”

“지금부터 말해줄게, 소름 돋을 준비 해라. 자, 그럼 인간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어. 그럼 그다음은 뭐냐?”

“내부?”

“그렇지. 이제 인간 내에서 각자 파벌이 생기는 거지. 공공의 적이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분열을 하는 거야.”

“정치질이 시작된 거네.”

“정확해. 그럼 인간들끼리 싸우면 어떻게 이겨야 되냐?”

“다구리 쳐야지.”

“맞아, 무리를 지어야지. 이 새끼 좀 잘 아는데? 쪽수 앞에 장사 없잖아.”

“어어.”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하나 들어간다. 무리를 많이 모으면서 결집력도 단단하게 하는 게 뭔지 아냐?”

“몰라, 돈?”

“그것도 맞긴 한데, 정확하게는 동질감이지. 유대감 뭐 그런 거. 끼리끼리 노는 거지.”

“유유상종.”

“오,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자성어. 어쨌든, 그럼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유대감을 형성하느냐. 답은 간단해. 같은 신을 믿는 거지.”

“여기서 신이 나온다고?”

“자, 인간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뭘 했을까, 바로 신을 만들었다 이거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번개가 친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그런 거. 그런 것들에 가상의 존재를 부여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퍼뜨리면서 신이 만들어지는 거지. 왜? 상상할 수 있거든.”

“시발, 설마.”

“그리고 좀 더 똑똑한 새끼는 그걸 이용하는 거야. 그 가상으로 만들어진 신을 이용해서 무리를 만들고 결집하는 거지. 그게 바로 종교야.”

“와, 시발, 맞네.”

“믿는 새끼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거지. 그 무리에 속할 수 있으니까. 인간 내의 경쟁에서 유리해지잖아. 자,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신을 만들어볼게.”

“이게 뭐라고 기대되냐.”

“자, 신이 뭐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결집하게 만드는 거지?”

“그렇지.”

“그러면 우리는 지금 왜 여기 있어?”

“존재 이유가 뭐냐고?”

“아니, 왜 지금 너랑 나랑 만나서 이 식당에 앉아있냐고.”

“술 마시려고.”

“자, 그러면 우리의 목적은 뭐야.”

“술이지.”

“술이 우리를 모이게 만들었지.”

“그렇지.”

“옛날 사람들도 신을 중심으로 모였지.”

“그렇지.”

“그럼 지금 이 술은 우리한테 뭐야?”

“신이지. 시발, 뭐야. 물 흐르듯이 넘어갔네. 시발, 너 천재냐?”

“뭐, 이 정도. 어떤데?”

“미친놈인가 진짜. 야 너 그냥 사이비 교주 해라. 진짜 잘할 것 같은데.”

“그럴까?”

“내가 도와줄게. 우리 같이, 인생 역전 한번 해보자.”

“좋은데? 돈 많이 벌겠네.”

“바로 롤스로이스 타고 다니는 거지.”

“서울에 집도 사고.”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는 거지.”

“좋다, 인생 한번 즐겨보자.”


(정적)


“사장님, 저희 계산할게요.”

“얼마 나왔냐?”

“이 정도?”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네? 나중에 돈 보내줄게.”

“됐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보내냐.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그냥 내가 살게.”

“그러냐, 거절은 안 할게. 그럼 2차는 내가 낸다.”

“2차까지 가게?”

“간단하게 마시는 거지. 왜, 힘드냐?”

“조금? 와, 옛날에는 밤 어떻게 샜는지 모르겠네.”

“나이 들어서 그래, 나이. 그럼 어떡할래, 노래방이라도 갈까?”

“글쎄, 일단 좀 걸어볼까. 담배도 좀 피우면서.”

“그러던가.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문 닫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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